관리사무소 전화가 요즘 바쁩니다.
“우리 아파트도 저런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장기수선충당금이 얼마나 쌓여 있어요?”
지성 주연 드라마 《아파트》가 방송된 뒤로 이런 전화가 부쩍 늘었답니다. 전직 조폭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선거에 나가 단지에 묻힌 돈을 노린다는 이야기인데, 보고 나면 자기 아파트가 궁금해지는 겁니다.
저는 이 전화들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아무도 안 물어보는 단지가 오히려 위험합니다.
문제는 물어볼 말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고지서를 한 장 꺼내놓고, 맨 위부터 맨 아래까지 같이 읽어내려가 보겠습니다. 종이 한 장에 답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 맨 위: 총액은 그냥 넘기십시오
제일 크게 적힌 숫자가 이번 달 총액입니다.
대부분 여기만 보고 접습니다. “지난달보다 3만 원 올랐네” 하고요. 그런데 이 숫자만 보면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오른 이유가 난방을 더 썼기 때문일 수도 있고, 경비 인원이 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승강기 수리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총액은 결과일 뿐입니다. 아래로 내려가야 이유가 나옵니다.
## 첫 번째 덩어리: 관리비
고지서 위쪽에 항목이 죽 나열된 부분이 있습니다. 이게 관리비입니다.
여기서 알아두실 것이 하나 있습니다. 관리소가 항목을 마음대로 만들 수 없습니다. 공동주택관리법과 시행령에 열 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일반관리비, 청소비, 경비비, 소독비, 승강기유지비, 지능형 홈네트워크 설비 유지비, 난방비, 급탕비, 수선유지비, 위탁관리수수료.
이 열 가지가 아닌 이름이 붙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물어볼 근거가 됩니다.
## 그중 세 줄을 짚어보겠습니다
경비비. 경비 인력에 드는 돈입니다. 경비원 월급, 회사가 부담하는 4대보험, 퇴직금 적립분이 여기 들어갑니다.
청소비. 미화 인력에 드는 돈입니다. 구성은 같습니다.
일반관리비.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몫입니다. 관리소장, 경리, 기전 담당자가 여기 해당합니다.
경비원과 미화원의 월급이 서로 다른 줄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소 인원을 줄여서 경비원 월급을 올린다” 같은 일은 회계상 간단하지 않습니다.
25평대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면 경비비가 월 3만 5천 원, 청소비가 2만 원쯤입니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K-apt)에 나오는 전국 평균입니다. 단지마다 다르니 우리 집 금액은 고지서에 적힌 숫자를 그대로 보시면 됩니다.
## 이 줄에서 잠깐 멈추겠습니다
경비비를 10년 전과 비교하면 이상한 것이 보입니다.
10년 동안 최저임금은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런데 경비비는 3분의 1 정도만 올랐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사람 한 명 월급은 법대로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전체 예산은 그만큼 늘지 않았습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사람을 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에 두 명이 보던 초소를 한 명이 봅니다. 한 명이 두 개 동을 순찰합니다.
경비 일 하시는 분들, 일이 계속 늘어나는 느낌이 착각이 아닙니다. 이 숫자가 그렇게 움직였습니다.
## 두 번째 덩어리: 따로 적힌 그 금액
관리비 항목이 끝나면 밑에 따로 적힌 줄이 있습니다. 장기수선충당금입니다.
법에서 관리비와 구분해서 걷으라고 정해둔 항목입니다. 왜 구분하느냐면,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관리비는 이번 달에 쓰는 돈입니다. 장기수선충당금은 쓰지 않고 쌓아두는 돈입니다. 나중에 외벽 도장, 엘리베이터 교체, 배관 공사 같은 큰 공사를 할 때 씁니다.
그래서 단지 규모에 따라 수십억이 모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노리는 돈이 이것입니다. 매달 조금씩 걷히는데, 쓰이는 건 몇 년에 한 번이고, 그동안 통장에 그냥 앉아 있으니까요.
세입자라면 이 줄을 특히 잘 보십시오. 장기수선충당금은 원래 집주인이 부담하는 돈입니다. 관리비에 함께 청구되니 매달 세입자가 내지만, 이사 나갈 때 집주인에게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몇 년 살았다면 금액이 꽤 됩니다.
청구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갑니다. 이사할 때 관리소에서 납부 확인서를 받아 집주인에게 정산 요청하십시오.
## 세 번째 덩어리: 관리소 돈이 아닌 것들
고지서 아래쪽에 또 다른 묶음이 있습니다.
전기료, 수도료, 가스사용료, 텔레비전 수신료, 생활폐기물 수수료, 입주자대표회의 운영경비 같은 항목입니다.
이건 사용료라고 부릅니다. 관리소가 걷어서 해당 기관에 넘기는 돈입니다. 관리소가 쓰는 돈이 아닙니다.
전기료가 올랐다고 관리소에 항의해도 소용이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관리소는 전달만 합니다.
## 맨 아래까지 읽었으면
이제 고지서 한 장이 세 덩어리로 보이실 겁니다.
관리비 열 항목. 따로 걷는 장기수선충당금. 그리고 사용료.
여기서 더 알고 싶으면 두 가지를 하실 수 있습니다.
첫째, 관리소는 항목별 산출내역을 다음 달 말일까지 공개해야 합니다. 단지 홈페이지나 게시판, 그리고 K-apt에 올려야 합니다. 안 올라와 있으면 요구할 수 있습니다. 공개는 의무입니다.
둘째, K-apt(www.k-apt.go.kr)에서 다른 단지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비슷한 규모의 단지보다 우리 경비비가 유독 낮다면, 경비원 한 명이 감당하는 면적이 그만큼 넓다는 뜻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마지막으로
경비원 월급을 올리려면 경비비 예산이 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예산은 입주자대표회의 의결로 정해집니다. 관리소장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니 처우 문제는 결국 단지 안에서 논의될 사안입니다. 그 논의가 시작되려면 누군가 고지서를 읽고 질문해야 합니다.
드라마 보고 관리소에 전화한 분들, 잘하셨습니다. 다음에는 이 글을 옆에 두고 전화하십시오. 물어볼 말이 훨씬 정확해질 겁니다.
오늘도 순찰 완료! (열두 번째 초소였습니다)
다음 초소에서 또 뵙겠습니다. 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