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계약서 한 장 꺼내보십시오.
없으면 회사에 요구하십시오. 계약서를 주지 않는 것 자체가 위반입니다. 사본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찾으셨으면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맨 위부터 맨 아래까지요. 대개 두 장짜리이고, 읽는 데 5분이면 충분합니다.
## 맨 위: 회사 이름을 보십시오
여기서 이미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아파트인데, 계약서에 적힌 회사는 처음 보는 이름일 수 있습니다. 용역업체입니다.
그러면 내 사용자는 그 용역업체입니다. 관리소장이 아니고, 입주자대표회의도 아닙니다. 월급을 달라고 할 곳도, 퇴직금을 달라고 할 곳도 그 회사입니다.
면접 볼 때 들은 회사 이름과 계약서의 회사 이름이 다르면 물어보십시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 직원이 아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 그다음: 계약기간
시작일과 종료일이 적혀 있습니다. 대개 1년입니다.
종료일을 지금 확인해두십시오. 그 날짜 두 달 전부터가 재계약 협상 시기입니다. 그때 갱신 얘기가 없으면 먼저 물어보는 게 낫습니다.
여기서 하나 알아두실 것이 있습니다. 계약기간이 1년으로 적혀 있어도, 갱신이 반복돼 왔다면 갱신을 기대할 정당한 사정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정년과 촉탁직 편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 직무 내용: 여기를 자세히 보십시오
“경비 및 시설관리”처럼 짧게 적혀 있을 겁니다.
이 칸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기 적히지 않은 일을 지시받으면 거절할 근거가 됩니다. 대리주차, 세차, 개인 심부름 같은 것들이요. 김 반장의 겨울 편에서 다뤘습니다.
반대로 여기에 “기타 관리소장이 지시하는 업무”라고 적혀 있으면 범위가 넓어집니다. 다만 그렇게 적혀 있어도 업무와 무관한 사적 심부름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 임금: 이 한 줄이 오늘의 핵심입니다
여기 이렇게 적혀 있다면 잠깐 멈추십시오.
“월 급여 2,510,000원 (제수당 포함)”
또는 이런 형태도 있습니다.
“기본급 및 각종 수당을 포함한 포괄임금으로 지급한다”
이걸 포괄임금제라고 부릅니다.
무슨 뜻이냐면, 야간수당이 얼마인지 따로 계산하지 않고 다 합쳐서 한 덩어리로 주겠다는 약정입니다.
## 포괄임금제가 왜 문제가 되나
문제는 계산을 확인할 수 없게 된다는 점입니다.
야간수당이 얼마인지 적혀 있지 않으면, 그게 제대로 들어간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회사는 “다 포함된 금액”이라고만 말하면 되고요.
여기서 알아두실 것이 하나 있습니다. 포괄임금제는 법에 있는 제도가 아닙니다. 법전을 찾아봐도 포괄임금제라는 조항은 없습니다. 실무 관행으로 생긴 것이고, 그 유효성은 법원이 판례로 정리해왔습니다.
법원의 입장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근로시간을 일일이 계산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고, 근로자에게 불이익하지 않으면 유효합니다. 그리고 유효한 포괄임금 약정이 있으면 나중에 수당을 더 달라고 청구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 2002. 6. 14. 선고 2002다16958)
반대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데도 포괄임금으로 묶었고, 그 안에 든 수당이 법이 정한 기준보다 적다면 그 부분은 근로자에게 불이익해서 무효로 봅니다. 그러면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경비원은 어떻게 되나
여기가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경비 근무는 근무표가 있습니다. 격일제인지 주야비인지 정해져 있고,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근무하고 휴게시간이 언제인지 다 적혀 있습니다.
즉 근로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운 직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계산이 아주 명확한 편입니다.
그러면 포괄임금으로 묶을 이유가 약해집니다. 계산할 수 있는데 왜 뭉뚱그리느냐는 물음이 생기니까요.
그리고 감시단속직으로 승인받은 경우라면 야간수당은 반드시 따로 계산돼야 합니다. 주휴수당과 연장·휴일 가산은 적용에서 빠지지만 야간수당은 남습니다. 감단직 편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계약서에 “제수당 포함”이라고만 적혀 있고 야간수당 금액이 따로 없다면, 그 금액이 제대로 계산된 것인지 확인해볼 값이 있습니다. 계산해보고 법정 기준보다 적으면 그 차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계산법은 격일제 월급 계산 편에 있습니다. 내 근무 형태를 넣어서 직접 계산해보시고, 계약서 금액과 비교해보십시오.
## 조금 아래: 이 조항이 있으면 무효입니다
가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월 급여에 퇴직금을 포함하여 지급한다”
이건 무효입니다. 판례가 명확합니다.
대법원은 월급이나 일당과 함께 퇴직금을 미리 나눠 지급하기로 한 약정은,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퇴직할 때 생기는 퇴직금 청구권을 미리 포기하는 것이어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전원합의체)
그래서 계약서에 그렇게 적혀 있고 실제로 매달 조금씩 받았더라도, 그건 퇴직금을 지급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퇴직할 때 퇴직금을 따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받은 금액은 나중에 정산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이 조항이 있는 계약서를 갖고 계시면 1350에 한번 상담받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 휴게시간 칸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휴게인지 적혀 있습니다.
이 칸을 사진으로 찍어두십시오. 나중에 그 시간에 실제로 못 쉬었다는 것을 다투게 되면, 계약서에 적힌 시간이 출발점이 됩니다.
계약서에는 휴게 9시간이라고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무전이 오고 순찰을 돌았다면, 그건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휴게시간 판결 편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 맨 아래: 서명하기 전에
서명란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만 하십시오.
빈칸을 확인하십시오. 금액이나 근무시간이 비어 있는 상태로 서명하면 나중에 아무 숫자나 채워질 수 있습니다.
사본을 받으십시오. 회사가 두 장 만들어서 한 장을 주는 것이 원칙입니다. 안 주면 요구하십시오. 사진이라도 찍어두십시오.
이해 안 되는 조항은 물어보십시오. 물어봐서 불이익이 오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나중에 “몰랐다”고 하는 게 불리합니다.
## 다 읽으셨으면
계약서 한 장에서 이만큼 나옵니다. 회사 이름, 계약 종료일, 직무 범위, 임금 구성, 퇴직금 조항, 휴게시간.
이 여섯 가지만 알아도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압니다.
그리고 계약서를 읽는 게 회사를 의심하는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악의가 아니라 관행에서 생깁니다. 관행은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때 바뀝니다.
오늘도 순찰 완료! (열여섯 번째 초소였습니다)
다음 초소에서 또 뵙겠습니다. 필승! 🫡